어부 세 명이 조그마한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그날 따라 이상하게도 고기라곤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저쪽 하늘에서 구름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파도가 일렁이기에 모두 놀라 서둘러 돌아갈 차비를 하였다. 그러나 바람은 점점 더 거세어 갔고 파도는 이제 뱃전을 치며 노조차 젓지 못하게 되었다. 세 사람은 노 젓기를 이제 단념하고 운을 하늘에 맡기는 도리밖에 없었다. 어둠이 차츰 덮이자 허옇게 뒤집히는 파도는 배와 사람을 일시에 삼키려는 듯 닥쳤다가는 지나가고 하는데 배는 나뭇잎이 흔들거리는 것과 같이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세 사람은 그저 죽었구나 하고는 배 바닥에 엎드려 정신이 없었다. 배가 어디로 떠내려가는지 방향은 물론 알 수가 없었다. 이러기를 사흘, 간신히 바람도 멎고 파도가 잠잠해지자 세 사람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시퍼런 바다와 하늘에 떠있는 구름뿐이었다. 사흘을 굶은 그들에게는 이제 노를 저을 힘조차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해 있었으니 그저 절망감만이 그들의 가슴을 엄습할 뿐이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내맡겨 두는 도리밖에 없었으며, 서로 이야기할 기력조차도 이들에게는 없었다. "어어-, 저것 보게!"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나머지 두 사람도 일어나 소리친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저 멀리 구름인지 안개인지는 분간을 못하겠으나 밑 쪽으로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것이 육지 같았다. 눈을 닦고 자세히 보니 틀림없는 육지였다. 절망에 빠져있던 세 사람은 동시에 환성을 질렀다. "살았다-" "이제는 살았구나" 세 사람은 꼭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하였다. 그리고 용기가 솟아났다. 세 사람이 다같이 노를 저었다. 다행히 물결도 그쪽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간신히 그 곳에 다다라 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위를 쳐다보니 여전히 안개는 자욱할 뿐이었다. 그저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다른 곳을 찾아보려고 노를 저어 나갔다. 간신히 한 곳에 이르니 겨우 사람이 발붙일 만한 곳이 눈에 띄었다. 배를 붙이고 내려보니 길도 없고 그저 바위투성이 이었다. 세 사람은 이곳저곳을 헤매며 쏘다니다가 간신히 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안개는 여전히 자욱하였다. 안개가 짙은 가운데에도 살펴보니 울창한 왕대밭 이었다. 세 사람은 그러한 것에 놀라고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선 무엇이든 간에 허기를 메워야 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이리저리 헤매다보니 무엇인가 앞에 보이었다. 보니 그 집안에는 수염이 하얀 노인 한 분이 문을 열어 놓고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세 사람은 다짜고짜 그 앞에 가서는 절을 넙죽 하였다. "웬 사람들인고?" 노인의 음성은 점잖은 가운데도 우렁찼다. 그리고 그 눈매는 빛났으며, 용모는 단아하였고, 범치 못할 위엄이 있었으며, 俗氣를 떠난 仙氣마저 보이는 것 같았다. 세 사람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허어 그 사람들 고생 꽤나 하였겠구먼" 하고는 그저 멀거니 세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 답답해진 세 사람은 다시 "저희들은 오늘까지 나흘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허기와 갈증에 지쳐 있으니 물과 먹을 것을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물은 없고, 사람이 먹을 것이라곤 없는데 어찌하나" 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람이 사람을 보고, 먹을 것이 없다니 도대체 될 말인가? 그렇다면 자기는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그럼 사람이 아니면 무엇인가 하고 제각기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노인이 선뜻 일어서더니 무엇인가를 방에서 가져 나오더니 "자 그럼 이것이라도 먹게나" 하고 노인이 내미는 것을 보니 꼭 사과같이 생겼는데 사과는 아닌 것 같았다. 세 사람은 우선 이판에 이것저것 가려볼 겨를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그 과실을 먹어치웠다. 맛이 어떤 맛이었는지 조차 몰랐다. 허기진 판이라 허겁지겁 먹느라 맛인들 알았으랴? 우선 심한 갈증을 좀 면한 것 같았지만 워낙 배가 고팠던 터이라 염치 불구하고 한 개씩만 더 줄 것을 간청하니, "아니, 이 사람들아 그것 한 개면 1년을 살 수 있는 건데"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허기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하룻밤을 그 집에 자고 나니, 세 사람은 완전히 생기를 되찾았다. 아니 생기를 되찾았다 기 보다 힘이 펄펄 나는 것 같았다. 노인이 안에서 나오더니, "이제 너희들은 집으로 가야지 식솔들이 몹시 기다릴텐데" "그렇지만 저희들은 어디 방향을 알아야 갈 수 있지요" "그런가 그러면 내가 길을 인도하지"하여 네 사람은 배에 올랐다. 그리고는 순풍에 돛을 올려, 노인이 가리키는 곳으로 배를 몰았다. 뒤돌아보니 섬은 여전히 안개에 싸여 있었다. 여러 시각을 달려 이윽고 저 멀리 수평선상에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살았습니다" "그럼 이젠 찾아가겠지" "고맙습니다. 어르신네" "뭐, 고마울 것 있나 자네들이 하도 딱해서 도와준 것뿐일세" 그리고는 옷소매 자락에서 어제 먹던 과실을 세 개 끄집어내어 세 사람에게 주며, "이 과실을 햇빛이 없는 곳에 두어야 하네. 그리고 또 오늘부터 쳐서 꼭 석 달 열흘만에 이것을 먹도록 하게. 그럼 잘 들 가게나" 하고는 인사할 틈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세 사람은 그저 서로 얼굴만 멍하니 쳐다 볼 뿐이었다. 드디어 울릉도에 돌아왔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들이 살아서, 그것도 기운이 펄펄해져서 돌아왔으니 집안식구는 물론, 온 마을이 야단법석이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꽃이 피었다. 그 신비와 안개에 쌓인 섬에 관해서 기이한 노인이며 신비로운 과실이며, 대나무의 숲이며 모두 듣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에 싸이게 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하였다. 그 뒤 호기심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몇이 모여 세 사람의 어부를 부추겼다. 그리고는 큰 배에다 식량과 물을 싣고 또다시 신비의 섬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철 아닌 복숭아꽃이 떠내려오는것을 보았을 뿐 풍랑이 심하여 끝내 이 섬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오고 말았다.
해당 메뉴는 PC에서만 이용이 가능합니다.